문학회/강남수요수필

그래 힐링이 살아갈 힘이다

나일강의백합 2013. 12. 22. 15:08

 리더스 에세이 대표문

권남희외 80인 작가 에세이

 

 

 

인수와 다락방

                                                                                             

 

비밀의방

외가에는 다락방이 있었다. 외가는 기역자집이었는데 방과 방 사이에 한두 계단 내려가는 커다란 부엌이 있고 그 부엌 위쪽으로 다락이 있다. 외가에 갈 때마다 그곳은 우리의 놀이터고 보물을 감추는 방이었고 잠자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언니와 나는 늦게까지 종이인형을 오리고 공기를 했다. 할머니한테 빨리 자라고 야단을 맞으면서도 이불을 덮고 속닥거리면서 잠이 들던 곳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곳에 한 가족이 들어왔다. 엄마와 아들만 셋인 가족이다. 그 다음부터는 올라갈 수가 없었다. 학교 때문에 언니와 나는 당분간 외가에서 살게 되었는데 비밀의 방이 사라진 것이다. 다락방을 올려다보며 꿈이 깨진 것만 같아 무척이나 아쉬워했지만 할머니는 절대 올라가면 안 된다고 다짐을 두었다.

 

        인수

다락방 집 막내아들이었던 인수가 생각난다. 나보다 두 살 위였지만 우리는 서로 잘 맞았다. 학교 갔다 오면 마루에 상을 펴고 숙제를 시작하면서 나는 큰소리로 인수를 불렀다. ‘인수오빠 숙제하자!’ 그러면 인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숙제를 가지고 쏜살같이 다락을 내려왔다. 그렇게 우리는 숙제를 하고 그러다가 가끔 다락방에서 기타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그럼 나는 ‘작은 오빠 노래 부르는 거 보러가자’ 하면서 뛰어올라갔다. 기타를 튕기던 둘째오빠의 손을 한참이나 쳐다본 적도 있다. 인수는 별명이 새까만 절벽이었다. 못생기고 뒤통수가 납작한 게 절벽 같다고 해서 우리 사촌오빠가 지은 별명이다. 거기에 비하면 둘째오빠는 정말 잘생기고 멋졌다. 다락을 기웃거리며 오빠가 있나 없나 궁금해 했던 기억이 있으니 아마도 호기심 있게 그 오빠를 지켜보았던 것 같다. 오빠는 가끔 우리에게 노래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희망적이고 신나는 노래를 불러야 한다면서 제일 먼저 가르쳐준 노래가 ‘희망의 나라’다. 그러다가 오빠가 공부한다고 내려가라면 다시 내려와서 숙제를 마저 하거나 인수와 바둑을 두었다.

 

어렸을 때를 기억할 때마다 신기하게 느끼는 건데 나는 누구건 잘 사귀었다. 소극적인 성격이었고 사교성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나 자신 대견한 생각도 든다. 오빠또래를 친구처럼 사귀고 언니또래와도 친구처럼 지냈다. 나는 또 공부도 웬만큼 했고 특히 수학을 좋아했다. 그때는 산수라고 했는데 푸는 게 재미있었고 숙제를 중요히 여겨서 학교에서 돌아오면 바로 숙제를 했다. 밤늦게 숙제를 꺼내서 했던 기억이 별로 없다. 내 친구가 놀러 와서 숙제를 할 때도 인수도 내려와서 같이 했다. 인수와 같이 친구 집을 멀리까지 데려다 준적도 있다.

 

인수와 인수 형들은 다 바둑을 잘 두었다. 인수와 나는 바둑을 두면서 놀았는데 인수가 바둑을 잘 두기 때문에 나는 미리 새카맣게 깔아두고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집을 만들면 인수는 들어와서 집을 다 깼다. 지금은 단수라고 하지만 그때는 아다리라고 부르고 알을 따먹으면서 두었는데 그게 무척이나 재미있었는지 우리는 어둑해질 때까지 마루에 앉아서 그 놀이를 했다.

아주 오래전에 사촌오빠한테서 인수가 바둑특기로 대학을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금도 가끔 잘 모르는 바둑대국을 본다. 혹시나 저기 인수나 인수 형들이 있을까하는 기대로 보는데 아직 찾지를 못했다. 인수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배가 툭 튀어나온 아저씨가 되어있을까? 아직도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너무나 궁금하다.

 

 

한바탕 꿈을 꾸는 곳

얼마 전에 작은방 베란다를 다시 꾸몄다. 새와 나무가 있는 벽지를 새로 바르고 분홍 커튼을 치고 장판을 새로 깔았다.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처음 이 아파트에 이사 와서 14층이라는 것이 두려웠다. 고소공포증이 느껴져서 베란다를 잘 나가지 못했다. 한참이 지나고 어느 날 갑자기 과감하게 베란다 공사를 시작했다. 작은방과 베란다 사이에는 높은 턱이 있고 그 위로 이중창이 있다. 그것을 보고 묘안을 생각해 냈다. 베란다 바닥을 올렸다. 앵글을 짜서 올릴 틀을 만들고 그 위에 두툼한 송판을 올리고 장판을 깔았다. 베란다 바닥이 올라오니 바깥창이 위험하게 느껴져서 방범창을 달고 커튼을 치니 작은 다락방이 되었다. 옛날 다락방은 아닐지라도 아이들의 소꿉놀이 방으로는 손색이 없다.

조그맣고 예쁜 방이 만들어졌을 때를 아직도 기억한다. 큰애가 너무 좋아서 거기서 자겠다고 했다. 무척 추운 겨울이었는데도 막무가내로 잔다고 하기에 돔같이 이불 집을 만들어서 재웠다. 아이만 행복했던 것이 아니다. 다락방을 만들어 놓고 처음 그곳에 섰을 때의 기분 또한 잊을 수가 없다. 두려움이 사라졌다. 나의 집념이 지구의 중력을 해체시킨 듯 다락방이 나를 안고 하늘 가운데 둥둥 떠 있는 느낌에 사로잡혀서 창밖을 보며 넋을 잃었다.

 

잠이 안 오는 날은 쟈스민차를 뜨겁게 타서 그리로 올라간다. 커튼을 살짝 젖히고 밖을 보기도 하고 옛날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도 세상을 살짝 엿본다. 탁 트인 거실 베란다와는 너무나 다른 느낌을 이곳은 내게 안겨준다. 아이와 꼭 붙어서 동화책을 읽어 주기도 했다.

나는 성냥갑 같은 아파트에서 이루기 힘든 꿈을 이루었다. 내 마음대로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생긴 것이다. 그 곳에서 기억 저 멀리 달아나는 사람들을 붙잡아 내 곁으로 끌어당기고 또 한바탕 꿈을 꾸기도 한다.

                                                                                                         (임금희 수필가 수록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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