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tory/쟈스민 수필

그 여름의 비밀

나일강의백합 2013. 7. 6. 19:15

 

 그 여름의 비밀

 

 

                                                                              임 금 희

 

 

   새빨간 자두의 색이 매혹적이고 먹음직해 보인다. 여름에는 수박에 밀려 언제나 슈퍼의 한구석  자리만 차지하더니 오늘은 수북이 쌓여 있다. 자두는 여름 한철 잠깐 나왔다가 사라진다.

 

  자두를 엄청 좋아했었다.

  내가 어릴 적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전근으로 충남 성환에서 산 적이 있다. 관사 옆으로 과수원이 끝도 없이 있었다. 주로 배나무와 복숭아나무였는데 한 쪽 옆으로 자두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그 과수원을 지나서 조금가면 과수원집이 보이면서 우물이 있다. 낮에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는 우물물을 길어오라고 주전자를 하나 들려주었다. 그래서 거의 하루에 한번은 주전자를 들고 그 우물물을 길러 다녔다. 어쩌다보니 그게 내 일이 됐다. 우물 가까이 한옥 한 채가 있고 마당 끝으로 대청마루가 보였다.

  맨 처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주전자를 흔들면서 우물가로 가다가 대청마루를 보고는 놀라서 몸

이 굳어버렸다. 마루에 미동도 없이 귀신이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얼음땡 하듯이 멈춰 서서 떨면서 쳐다보니 귀신이 아니라 할머니였다. 너무나 무서웠지만 할머니인 것을 알고는 멀찍이 서서 인사를 했다. 할머니는 내가 우물물을 길러 오는 것을 멀리서부터 보고 계셨다. 그다음부터 나는 언제나 물을 뜨기 전에 대청마루 가까이 가서 할머니께 인사를 하고 나서 두레박으로 물을 펐다. 무섭기도 했지만 꼭 혼을 낼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먼저 예의를 갖춘 건데 내가 예뻐 보였는지 언제나 웃어 주시면서 가끔 불러서 싱싱한 고추를 주셨다. 그럼 엄마는 그 그릇에 우리 집 닭이 낳은 계란을 넣어서 내게 들려 보냈다. 처음 귀신처럼 으스스했던 그 할머니와 친해진 것이 좋았는지 나는 엄마가 얘기하기도 전에 학교에서 돌아오면 으레 주전자를 흔들며 우물가로 향했다. 집에 가는 길에는 지름길인 과수원을 질러갔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자두나무에 자두가 조그맣게 열린 것이 보였다. 새파랗고 아직 커지지도 않은 건데 너무나 맛있어 보였다. 자두나무는 좀 작고 내 손이 닿는 곳에 열매가 달려 있어서 따기가 쉬웠다. 좀 큰 것으로 하나 따서 먹어보았다. 와우, 새콤달콤 완전 홀릴 정도의 강한 맛이 입안에 감돌았다. 잊을 수 없는 유혹이었다. 그렇게 나의 자두 서리는 시작됐다. 물을 길러 다니는 동안 하나씩 하나씩 자두를 따먹었다. 손이 닿지 않으면 나무를 좀 타고 올라가서 따먹었다. 야금야금 먹기 시작했는데 그 맛이 아주 꿀맛이었다. 으레 주전자를 들고 가다가 따먹고 오다가 따먹고 그렇게 여름 한철을 즐겁게 보냈다.

 

    여름 막바지인 어느 날 그날도 친구들하고 놀다가 더워서 우물에 갔다. 세수를 하고 물을 먹고 서로 놀면서 과수원을 질러서 집으로 가고 있었는데 아저씨들이 과수원을 손질하고 계셨다. 그런데 그 아저씨들이 하는 말에 나는 기겁을 했다.

“올해는 자두가 안 열리네. 몇 넘 열리지도 않았어. 그냥 내버려뒀더니 영양이 안 좋은 건지 왜 그런지 몰러.”

“그려? 글구 보니 나도 자두 열린 걸 못 봤네. 이파리도 안 좋아 보이네그려. 거름 좀 줘야겠네 그려.”

자두나무를 쳐다보면서 무심코 하는 그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우리들도 거기서서 덩달아 자두나무를 쳐다보니 이파리도 힘이 없어서 뒤틀린 듯 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따먹으면서 자두나무를 볼 때는 오로지 자두만 보였고 나무가 어떤 상태이며 잎은 어떤 모양인지 눈에 들오지도 않았다. 그동안 오며가며 두 그루에 열린 자두를 내가 다 따먹은 것이다. 자두가 안 열리게 보일 정도로……. 내가 그리 많이 따먹었는지 나도 몰랐다. 몇 개 안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완전 싹쓸이를 여름내 했던 것이다. 속으로 뜨끔했지만 내 뱃속에 다 있다고 말을 할 수도 없고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듯이 과수원을 나왔다. 그동안 운 좋게도 한 번도 들키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스릴 있고 맛있었던 과일은 내 생전 다시없었다.

 

    내게 그 시절은 한여름 내리쬐는 태양과도 같이 강렬했다. 자두처럼 빨갛고 강한 신맛과도 같은……. 성환을 사랑하게 만든 과수원과 우물이었다.

  자두나무는 나의 비밀을 간직하고 아직도 묵묵히 서 있을까. 지금쯤 어떻게 변했을는지 궁금하다. 아름드리나무가 됐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작은 키의 나무였다. 아저씨들의 보살핌으로 나의 손이 닿지 않을 정도로 높이 올라가서 진홍빛 수많은 열매를 매달고 우뚝 서있는걸 그려본다. 꼭 한 번 다시 가보고 싶다.

 

                                                                                                                  (2013. 7월호 월간 한국수필 수록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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