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tory/쟈스민 수필

하얀 연등

나일강의백합 2014. 7. 8. 15:19

 

                             

하얀 연등

 

 

 

앞마당 위로 하얀 연등이 그득하다.

압도할 것 같은 길상사의 육중한 문을 들어서니 흡사 무릉도원이다. 눈을 떼지 못하고 천천히 걸었다. 하얀 연등이 아름다운 영혼의 분신처럼 달려있다. 진도 앞바다 여객선 사고로 숨진 학생들이 생각나 걸음을 멈췄다. 다 피지 못한 꽃봉오리들이 바다밑바닥에 잠겨있는데 마치 유체 이탈한 혼과도 같이 하늘위에서 내려다본다.

얼마나 많은 염원을 담고 저 하늘높이 달렸을까. 이곳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해탈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연등은 하늘을 메웠다. 알록달록하고 오색찬란한 색과 흰색의 연등까지 빼곡하게 달려있는데 눈은 자꾸 하얀 연등을 해바라기하고 있으니…….

부처님 오신 날을 몇 주 앞두고 절은 부산스러움이 있지만 내면은 차분한 느낌이다. 고즈넉하고 달뜬 분위기가 묘한 조화를 이루며 맑은 공기 속으로 침잠되고 있다. 요사이 푸른 하늘을 본지 정말 오래되었는데 그나마 연등으로 위로받는다. 이 연등들은 거의 비슷한 염원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무엇을 위하여 또는 누군가가 잘되기를……. 좀 다른 기원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로 귀결되는 게 아닐까. 정말 모두가 다 잘됐으면 좋겠다.

승복을 갖춰 입은 스님들이 줄지어 지나가는 모습을 보니 네팔이나 티베트의 승려가 생각난다. 스님들의 뒷모습에서 고뇌와 해탈이 동시에 겹쳐지면서 꼭 어린학생들을 위하여 불공을 드리러 간다는 생각이드니 나 또한 이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어쩌지 못하여 한숨만 나온다.

 

 길상사의 유래는 특이하다. 한때 이곳은 대원각이라는 최고급요정이 있었고 주인은 기생신분인 한 여인이었다. 백석시인과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도 전해져 오는 여인은 성북동 산자락의 넓은 땅과 대원각의 소유주였다. 길상화라는 법명을 가진 그녀는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 받아 당시 엄청난 규모의 대지와 대원각을 시주하여 오늘날의 길상사로 거듭나게 되었다고 한다. 길하고 상서로운 꽃이 사찰이 되었으니 그야말로 전설속의 이야기다.

길상사의 유래를 들으니 길가의 돌이 길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어 요긴히 쓰인다는 말이 생각난다. 현실도 그렇게 평범하고 낮은 곳에 있는 자가 세상의 머릿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하늘가득 달린 연등에 띄워본다.

법정스님은 자신의 저서 「무소유」에서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면서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고 했다.

진리를 대하고 그것을 뼛속깊이 느끼며 실천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온 세상을 선택한 아름다운 여인의 용기가 절실한 때다.

우거진 나무사이로 보이는 개인 명상 방들이 성북동 깊숙한 산자락 속에서 누구나 편하게 쉴 수 있게 나지막이 엎디어 있다. 다시 와서 저 작은 명상의 방에 앉아서 내면의 나를 들여다 보기도하고 피지 못한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고 싶다. 자꾸만 떠오르는 아픔이 가슴을 친다.

 

 

여객선 세월호는 우리나라의 보이지 않는 한 단면을 보여준다. 한 척의 배를 운행하고 책임지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오로지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그걸 유지하고 더 많은 부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하여 죄 없는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수장시키고 있는가. 국민소득 2만 불이라고 하면서 약하고 힘없는 자의 자리는 바다 밑인 경우가 허다하다.

 

마음을 추스르며 진영각이 있는 언덕위로 올라갔다. 자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법정스님의 유골을 모신 곳이다. 평생을 가진 것 없이 지내시고 영혼을 밝히는 저서들을 쏟아내고 한 여인에게 길상화라는 고운 이름을 지어주며 음지가 양지되는 기적을 일궈내신 분. 세상이 어찌 돌아가든 이곳은 마음의 안식처와도 같이 평화롭다. 먹먹한 마음으로 서있으니 숙연해진다. 법정스님은 지금 우리를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계실까. 많은 학생들이 수장되었는데 덤덤히 모든 것을 초월하여 그들을 보듬고 계시는 건 아닌지…….

사찰 경내를 내려다보니 연등의 나라다. 길상사의 연등은 화사한 꽃봉오리들이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 둥둥 무리지어 여기저기 모여 있는 모습이다. 저렇게 아름답게 피어나기를, 물 위로 피어오르는 연꽃과도 같이 피어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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