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tory/쟈스민 수필

약육강식

나일강의백합 2013. 4. 24. 20:04

 약육강식 

 

 

 

                                                                                                                                임 금 희

 

  안개가 자욱이 끼고 무척 추운 아침이다.

  큰 애가 출근 준비를 하다가 우연히 수족관을 들여다보더니 호들갑을 떤다. 다가가 보았더니 열대어 블랙몰리 한마리가 구석에 쳐 박혀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주위에 있던 물고기들이 공격하고 있었다. 큰 애가 법석을 떤다.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뜯어먹는다고 손가락으로 유리를 탁탁 쳐서 달라붙는 물고기를 떨어뜨리는데 그것도 순간이고 다시 다가온다. 할 수 없이 죽어가는 물고기를 건져서 다른 곳으로 옮겼다. 아마도 얼마 가지 않아서 생명을 다할 것이다. 큰 것에게 자주 공격을 당했던 풍선몰리였다. 어항 안에서도 서열이 분명하다. 제일 크고 힘이 센 것이 가운데 가장 좋은 자리에서 다가오는 물고기들을 공격하고 물리친다. 자기보다 많이 작으면 개의치 않는데 자신과 경쟁상대가 될 것 같으면 가차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참 많이들 죽어 나갔다. 그런 경우가 허다하여 그 센 물고기를 건지면 그 다음 센 것이 또 그러기 때문에 그냥 놔두는데 유난히 이 풍선몰리가 자주 공격을 당했다. 그래도 용케 살아남는다 했는데 끝내 오늘 가는가보다. 한정된 공간에서 물고기 키우는 것도 쉽지 않다. 물고기도 종류와 크기별로 키워야 하는데 그렇게 키우려면 한정 없이 어항이 필요하니 이 작은 공간에서 그렇게 할 수도 없고 해서 종류별로 키우다 보니 큰 것이 공격하는 경우가 많고 그렇게 해서 죽는 경우가 많다. 그저 큰 것이 좀 순하기를 바랄 뿐이다. 다른 것들은 재빨리 피하고 수초사이로 숨는데 이 물고기는 좀 느렸다.

 

  오래전에 물고기 종류는 알 수 없지만 너무나 예뻐서 사다 키운 열대어가 있었다. 움직일 때마다 비늘이 반짝이면서 무지개 빛이 보이기도 했다. 색깔이 너무나 예뻐서 하나는 노랑이로 또 하나는 초록이라 이름 지었는데 둘의 성질이 보통이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먹이를 주려고 들여다보면 둘이 붙어서 엄청나게 싸우고 있곤 했다. 나는 수족관 안에서조차 그 조그만 물고기들이 머리를 부딪치면서 그렇게 싸우는 것을 처음 보았다. 하루하루 보스가 달라진다. 이삼일이나 길게는 일주일 갈 때도 있지만 다시 피 튀기며 싸워서 갈아치운다. 대단한 물고기들이었다. 피라니아가 이런 거였던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꽤 오래 살았다. 그러다가 노랑이가 다쳤는지 뒤집어지더니 죽었다. 죽은 노랑이를 건지면서 너무나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 거기에 비하면 초록이는 어항 속의 일인자로 아주 여유로워 보인다. 물고기가 병들거나 죽으면 물비린내가 심하게 나면서 금방 혼탁해진다. 며칠 후 수족관 물갈이를 하려고 건져서 옮겨놨는데 눈 깜박할 사이에 초록이가 보이지가 않았다. 샅샅이 찾았더니 몇 번을 튀었는지 베란다까지 나가서 모로 누워있는 것이 아닌가. 잠깐 뚜껑을 늦게 닫았었는데 그새 튀어나간 것이다. 몇 달 동안 그들의 전쟁을 보느라 흥미로웠는데 둘 다 사라져 버리니 참으로 허전했다.

 

  물고기의 기억은 단 몇 초이며 거의 본능으로 움직인다고 한다. 거기에 비하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기억은 수십 년이고 그 모든 것을 대대손손 이어내릴 정도의 지능이니 가히 수천 년이 흐를 수도 있다. 그런 대단한 인간도 욕심을 조절하지 못하고 드러낼 때가 많다.

  약육강식은 물고기만이 아니다. 얼마 전 재벌이 떡볶이 집까지 손을 뻗쳐 영세 상인이 설 곳이 없다는 뉴스를 보았다. 질서가 깨지고 물이 혼탁해지면 언젠가는 조물주도 물갈이를 할 텐데…….

  선의 끝은 있어도 악의 끝은 없다고 한다. 그러다가 재벌도 베란다까지 튀어나간 물고기 꼴이 될까 적이 걱정된다.

 

(2013년 2월호 대한문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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