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tory/쟈스민 수필

달빛에 홀리다

나일강의백합 2013. 1. 17. 10:56

                         달빛에 홀리다        

                                                                                                       임 금 희

 

   날이 밝는 것 같아서 눈을 떴다. 창문 밖으로 둥근 보름달이 보인다. 휘영청 밝은 달빛 때문에 날이 밝는 줄 알고 일어난 거였다. 달빛이 이렇게 쏟아져 들온 적이 있었던가. 커튼을 치고 창문을 덧문까지 닫고 자는 현대인은 달을 볼래야 보기가 힘들다. 방안 가득 찬 달빛 바다에 잠긴 채 세상을 본다. 동방의 불이 켜진 듯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가 참으로 아름답다.

  순간 달이 나 여기 있다고 나를 봐달라고 애타게 부르는 착각에 빠진다. 하늘위로 이끄는 달의 인력이 느껴져 온다. 달을 볼 때면 언제나 오슬오슬 추위가 느껴지는 시린 가슴을 보는 듯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달이 아니다. 동이 트기 전 에너지를 전해주듯이 황홀한 달빛으로 세상을 어루만지는 따스함이 묻어있다. 오늘 유난히 달빛이 강하다. 달에 홀리듯이 한참을 미동도 없이 바라보았다. 서쪽 하늘에 해같이 빛나는 달을 맞이하는 나의 마음이 설렌다. 새털 같은 날들이 구름 흐르듯이 흘러가고 그 하루하루는 늘 비슷한 일상이지만 들여다보면 사뭇 다르다. 하루를 시작하는 새벽의 하늘부터 이렇게 다른데 그걸 제대로 못 느끼며 산다는 것이 아쉽다.

 

어릴 적 보았던 달은 유난히 커보였다. 내가 작아서 그렇게 느낀 건지 아니면 지구와 달 사이가 조금 가까워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지만 한가윗날 달구경을 할 때면 남산위에 떠오른 달이 정말 동요 속에 있는 쟁반같이 커다란 둥근 달이었다. 우리 집은 청파동이었는데 지대가 높은 동네라서 남산을 마주보고 있었다.

  옛날 우리의 달은 옥토끼가 방아를 찍고 계수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달을 보며 시를 읊고 동요를 불렀다.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사람들은 달님에게 빌었고 늑대인간이 만월이 되면 늑대로 변해서 달을 보고 울부짖었다. 또 강에서 노닐다가 물속의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일화의 이태백이 놀던 달이 있다.

  21C의 달은 과학이 말해주고 있다. 지구의 위성이며 달의 인력으로 바닷물을 움직여 조수간만의 차를 만들었다. 또 인간은 달 정복을 꿈꾸며 우주선을 타고 달을 탐사하고 생명체의 흔적을 찾는 연구 대상으로 변했다. 암스트롱이 밟은 달에는 황량함과 고요뿐이었다. 그 어떤 것도 없는 달 표면에서 월면차를 타고 다니다가 흙을 채집하고 돌아왔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지구와 달에 관한 거였다.

지구가 처음에는 지금보다 작고 불안정했으며 지구 옆에 쌍둥이같이 작은 행성이 있었는데 그 행성과의 충돌로 지구는 더 크고 강해졌으며 또 다른 행성의 파편들이 모여서 달이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 달과 지구는 쌍둥이였다는 거다. 그런데 그 달과 지구와의 거리가 아주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기 때문에 달도 조금씩 멀어지면서 수억 년 후에는 지구에서 떨어져나가 우주공간을 돌아다니게 된다니,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늘에 걸린 달은 그대로인데 과학의 발달로 달도 변천과정을 겪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누구나 현재의 달을 알고 있지만 여전히 달을 사랑하고 소원을 빌고 말을 건넨다. 더 먼 과거에는 그는 우리와 쌍둥이였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운명은 아닐는지…….

  우리 부부도 서로의 존재를 유지하면서 떨어질 수 없는 운명이 그와 비슷하다. 달은 음의 기운으로 곧잘 여성과 비유되기도 한다. 나는 남편의 지력위에 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 그들을 키우고 보호하듯이 그 주위를 돌면서 자신의 위치를 지켜가는 것이 우주의 조화에 한 몫을 하는 삶은 아닌가 내심 위안해본다.

 

 

  여명이 밝아온다. 지금 새벽하늘의 달은 너무나 아름답다. 마지막 달의 정기를 뿜어주면서 서서히 서쪽 하늘로 내려가고 있다. 영심이가 창문 밖을 보면서 말을 건넨 달이 저 달이었겠지. 달의 몰락을 지은 작곡가는 어떤 달을 보았을까. 지구에 내려온 분신도 있다. 가난한 달의 자손들이 달동네에 살고 있지는 않는지.

  아직도 달은 우리의 관심과 사랑을 먹으면서 거듭 태어나고 있다.

 

                                                                         (2012. 12월 한국수필 신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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