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tory/쟈스민 수필

어떤 외침

나일강의백합 2013. 3. 11. 09:56

 

 

 

 

 

어떤 외침

                                                                                                                임 금 희

 

  앙상한 가지가 파르르 떨린다.

매서운 날씨라서 나름 중무장을 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았는데 눈이 온다. 올겨울 눈이 자주 온다. 십분도 안돼서 눈송이가 굵어지고 쏟아 붓기 시작했다. 엄청 춥다. 얼굴이 얼고 손도 시리고 낮인데도 컴컴하다. 복잡하고 미끄러운 길을 조심조심 걸어서 갔다. 한참을 걷다가 실내로 들어오니 따뜻하고 환하다.

코트를 벗으면서 밖을 내다보았다. 아, 이렇게 놀라울 수가……. 뿌연 하늘에서 커다란 눈송이들이 한정 없이 밀려 내려오고 있었다. 저 밖에 있을 때와 안에 들어와서 바라보는 눈이 다르다. 눈들의 반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하늘은 다른 세상을 만들기로 작정을 했나보다. 저녁도 아닌데 어둑어둑하고 집으로 돌아갈 걱정을 하게 만든다. 그런데 어렴풋이 눈에 들어오는 모습이 있다. 쏟아지는 눈길 건너편 어둑한 대문 앞에 모자를 쓴 한 아이가 서 있다. 아이의 모자위에도 어깨에도 눈으로 하얗다. 저 아이도 나처럼 눈들의 반란을 지켜보고 있는 것인가.

  순간 성냥팔이 소녀가 떠올랐다. “성냥 사세요!”를 외치며 추운 겨울 맨발로 성냥을 팔러 다녔던 동화속의 성냥팔이 소녀가 생각나면서 훈훈해지던 몸이 얼어붙고 말았다. 춥고 얼어붙은 거리에서 꽁꽁 얼어 죽은 성냥팔이 소녀. 동화는 참으로 슬픈 이야기가 많다. 「성냥팔이 소녀」와 「플랜더스의 개」 등 아이들에게 너무나도 슬프고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그 옛날 참 살기 힘든 세상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사실 동화만 그런 것은 아니다.나 어릴 때도 그리 편한 세상은 아니었다.

 

 

  살면서 지우고 싶은 기억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지우개로 지우고 고치고 싶은 기억들이 있다. 성냥팔이 소녀는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일 때 들었던 어떤 외침을 기억나게 한다. 그 시절 나는 남에게 무관심했던 자기중심적인 아이였다. 겨울은 모든 곳이 다 추웠다. 언제나 발이 시려웠다. 집에서도 마루에 있던 걸레가 꽁꽁 얼었고 방안도 입김이 나오고 밖에서 들어오면 아랫목에 손을 넣으면서 몸을 녹였던 때였다. 그때는 거지들도 많았다. 우리 집에는 언제나 오는 거지아이가 있었다. 추운 겨울날 대문 앞에서 그 아이는 큰 소리로 동냥을 했다. “밥 좀 주세요!” 언제나 그 말을 몇 분 동안 외쳐대다가 가곤 했다. 집에 들어오다가 다른 집 대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본 적도 있다. 나보다 훨씬 어리고 남루한 아이였고 둘이 와서 외친 적도 있었다. 내가 그 아이에게 밥을 갖다 준적이 있었던가. 나는 없었지만 자주 와서 외쳤던 것을 보면 엄마가 그 아이들에게 밥을 주었던 것 같다. 엄마가 살아계셨다면 꼭 물어봤을 텐데 엄마는 돌아가시고 안계시다. 그런 기억들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떠오르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때 우리 집 대문 밖의 그 소리가 쟁쟁하다. 비슷한 대문을 보면 가끔 생각이 나고 한숨이 나온다. 그 아이는 슬픈 동화책 속에서 나온 아이같이 내 기억 속에서 어느 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불쑥 튀어나왔다.

 

 

  건너편 대문 밖에 서 있던 아이는 잦아들 기미가 없는 눈을 맞으면서 눈 속을 걸어서 갔다. 거리가 눈으로 덮이고 동장군으로 얼어붙는다. 아이는 무사히 집으로 잘 돌아갈 것이다.  그 옛날 우리 집 대문 밖의 그 아이도 그 때 외쳤던 것처럼 그렇게 씩씩하게 잘 살아주기를, 이미 나처럼 나이를 먹었겠지만 언제 어디서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열 살도 안 된 어린 아이가 세상에 대고 외쳤다. “밥 좀 주세요!” 불현듯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어라 한 구절이 가슴에 와 박힌다. 나도 변명을 하고 싶다. 저도 그때는 철없는 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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