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근의 시학]
시인을 만드는 아홉가지 비망록
1. 슬픔이 시인을 만든다
나를 시인으로 만든 것은 '슬픔'이었다. 그 슬픔에 힘입어 처음
"시인이 돼야겠다"는 꿈을 가진 것은 초등학교 5학년때였다. 그
전 해 4월 벚꽃의 도시 진해에서 나는 아비없는 자식이 되었다.
아비없는 빈자리에 제일 먼저 슬픔이 찾아왔다.
2. 사랑도 시인을 만든다
나는 시를 쓰듯 사랑의 편지를 썼다.
사랑이, 첫사랑이 내 시를 더 튼튼하게 만들어 주었다.
3. 펜혹이 시인을 만든다
펜이나 연필로 글을 쓰는 사람의 손에는 반드시 펜혹이 남아있다.
오래 글을 쓰다보면 펜을 받치는 가운데 손가락에 혹 같은 굳은 살이
박힌다. 그것이 펜혹이다.
펜혹은 글쓰기의 상처다.
4. 분노도 시인을 만든다
나는 자주 분노했다. 그리고 분노는 혁명의 꿈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꿈은 꿈일뿐, 내가 택할 수 있는 혁명의 방법은 시일 수밖에 없었다.
5. 부끄러움이 시인을 만든다
신춘문예. 당선 시들을 읽은 뒤에는 기다림보다 더 큰 부끄러움이 엄습했다.
그 부끄러움이 나를 성숙시켰다. 현재의 내 시가 어떤 자리쯤에 서있는지를
확인시켜주었던 부끄러움이 내 시의 뺨을 후려쳤다.
6. 바람도 시인을 만든다
7. 길이 시인을 만든다
8. 유행가도 시인을 만든다
9. 그 마지막엔 시만이 시인을 만든다
시인이 되는 교과서는 시인들의 시에 있고, 시집에 모여 있다.
시인을 꿈꾸거나 시인인 그대여, 시를 읽자. 시집을 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