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tory/쟈스민 수필

청양의 해 하늘을 보다

나일강의백합 2015. 3. 15. 08:22

 

 

 

청양의 해 하늘을 보다

                                                                               임 금 희

 

​청마를 떠나보내고 양의 해를 맞이했다.

시간이 어찌나 빠른지 지나간 다음에 되짚어보게 된다. 이맘때마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이 하나의 의식처럼 되어 버렸다. 밖을 나오니 차가운 밤공기가 싸하니 몰려오면서 몸이 부르르 떨린다. 도시의 밤은 별보다 불빛이 휘황하지만 짙푸른 겨울 하늘 멀리 별들이 보인다. 소름처럼 돋는 별들 가운데 유난히 반짝거리는 별들이 있다. 그런 별들의 존재처럼 뛰어난 사람도 부럽지만 여기까지 온 지금의 나 자신도 대견하다. 나는 어떤 존재로 지난해를 보냈을까. 주부의 위치에서 가족들을 챙기고 조용히 글을 쓰며 만족하며 살았던가.

얼마 전 명동성당을 갔다.

을미년 새해를 나름 뜻있게 시작하고 싶었다. 그전에는 가족이 다 같이 정동진에서 일출을 보며 그해의 소원을 빌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모두들 감기로 고생을 해서 조용히 집에서 쉬어야했다. 그것이 아쉬워서 명동을 나갔다. 작년에는 참혹한 사건들이 많아서 올해는 세상이 평화롭기를 간절히 빌고 싶었고 우리 가족을 위한 바램도 기원하고 싶었다. 북적거리는 사람들 사이를 걸으며 평화를 곱씹었다.

어스름 저녁 성당위로 금성과 수성이 나란히 떠올랐다. 그야말로 행운이었다. 저 별을 따라 왔던가. 아직 해가 다 넘어가지도 않았는데 성당 탑 위로 금성이 나오더니 시간을 좀 두고 수성이 따라 나왔다. 금성은 눈을 홀릴 정도로 반짝이는데 그 옆에 있는 수성은 작게 반짝거렸다. 마음속의 소망을 별빛을 향해 실어 보냈다. 올해는 큰애에게 좋은 배필을 꼭 만나게 해달라고. 성당 탑 위 나란히 있는 금성과 수성처럼 인연이 닿은 두 사람이 만나서 사랑하기를 빌었다. 지금도 성당 위에서 반짝거리는 별빛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앞으로 다가올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때때로 답답하거나 궁금하면 습관처럼 하늘을 본다. 밤하늘의 별을 보거나 우주에 관한 다큐를 보면 가슴속에서 별이 나타나듯이 반짝거림이 느껴지고 머릿속에 전기가 오듯이 저릿해진다. 하늘은 태고의 세상을 보는듯해서 신비로움에 빠져 들어가니 그것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얼마나 매료될까싶다. 어느 별은 수억 년 전에 빛나는 모습이라고 하니 알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가 언제나 흥미롭다. 새로운 꿈을 꾸며 생기를 되찾게 하는 별보기를 좋아하게 된 것은 젊은 시절의 기억이 한몫을 한다.

남해안으로 휴가를 갔을 때였는데 하늘에 별이 총총했다. 잠 못 이루는 밤이었는데 민박집 옥상에 돗자리를 깔고 누웠다. 무수히 반짝이는 긴 강이 하늘에 있었고 별똥별이 수시로 떨어졌다. 눈이 점점 말똥말똥해지면서 별들의 세계로 빠져들더니 급기야는 별들이 내게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내려 그 중압감을 당해내지 못하고 눈을 감아 버렸다. 잠시 눈을 감다가 다시 뜨면 또다시 별은 쏟아져 내렸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체험이었고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지금도 가끔 하늘을 본다. 많건 적건 별이 쏟아지는 체험을 다시는 못했지만 저 별무리 그득한 우주의 한 존재라는 것이 뿌듯하다.

별들도 무리를 이룬다. 우리 인간이 사회라는 이름으로 무리지어 살아가듯이 별들도 서로 어울려 모여 있기를 좋아한다. 천문학자의 연구로는 별이 무리지어 모여 있는 곳에서 별도 더 많이 탄생한다고 한다. 별들의 문화가 꽃핀다고 말하고 싶다.

최인호의 유고집《눈물》가운데 가슴을 파고드는 구절이 있다.

‘우리 모두는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이다. 이 별들이 서로 만나고 헤어지며 소멸하는 것은 신의 섭리에 의한 것이다. 이 신의 섭리를 우리는 인연이라고 부른다. 이 인연이 소중한 것은 반짝이기 때문이다.’

별처럼 반짝이는 인연이라는 글귀가 심장을 고동치게 한다. 내게도 별처럼 소중한 인연들이 있다. 올 한해 귀 기울이고 빛을 잃지 않도록 눈을 떼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운명으로 연결된 가족과 부모형제, 또 무리지어 눈을 반짝이며 글을 쓰고 서로 소통하고 아픔을 보듬어주는 친구들이 있다. 서로가 아쉬울 때 도와주고 김장도 같이 하는 이웃도 있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다시 하늘을 본다. 올 한해의 소중한 꿈들이 반짝인다. 힘든 사람들의 희망이 서성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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