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설헌
임 금 희
강릉 교룡산 밑의 금빛 동상은
머리에 눈꽃 방울을 달고
하얀 장옷을 걸쳤다
펼쳐진 책은 하얀 시어로 두툼하다
눈 위의 난은 조금은 슬퍼보였다
처마마다 고드름이 길게 드리워진 세상은
사방이 눈이 시릴 만큼 아름다운데
빈 가슴을 품고 너무나 짧게 머물렀다
무얼 그리 서둘렀을까
남정네와 사대부의 세상 남길 것 없이 가고 싶었는지
아이들이 보고파 서둘러 가셨는지
여인이 기를 펴며
맘껏 날개를 펼칠 수 있는 시대를 만나
두 배를 더 살고 있는 나는
이룬 것 없는 죄책감에 고개만 숙이고
사백여년을 건너 뛰어 오신 숨결을 느끼며
차마 마주하지 못하고 가슴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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