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회/지필문학회

지필문학 2015년 4월호

나일강의백합 2015. 3. 18. 16:30

 

 

 

 

허난설헌           

 

                    임 금 희

 

 

강릉 교룡산 밑의 금빛 동상은

머리에 눈꽃 방울을 달고

하얀 장옷을 걸쳤다

펼쳐진 책은 하얀 시어로 두툼하다

 

눈 위의 난은 조금은 슬퍼보였다

처마마다 고드름이 길게 드리워진 세상은

사방이 눈이 시릴 만큼 아름다운데

빈 가슴을 품고 너무나 짧게 머물렀다

무얼 그리 서둘렀을까

남정네와 사대부의 세상 남길 것 없이 가고 싶었는지

아이들이 보고파 서둘러 가셨는지

 

여인이 기를 펴며

맘껏 날개를 펼칠 수 있는 시대를 만나

두 배를 더 살고 있는 나는

이룬 것 없는 죄책감에 고개만 숙이고

사백여년을 건너 뛰어 오신 숨결을 느끼며

차마 마주하지 못하고 가슴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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