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tory/쟈스민 수필

고독한 섬

나일강의백합 2022. 4. 3. 08:02

 

독도탐방 체류기 

 

고독한 섬

 

 

임금희

 

 

눈이 가려지고 의식을 잃었다.

여기가 어딘가. 얼마 만에 깨어난 것인지…. 옷은 초록색 운동복으로 갈아입혀져 있다. 게임참가가 바로 실행되는 것인가. 방송이 들린다. 모두 나와서 모이라는 안내방송에 사람들을 따라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헉! 배 안이다. 커다란 운동장 같은 선상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오징어게임이 시작된다. 무조건 이겨야만 한다. 게임에 지면 저 깊은 바다로 빠뜨릴지도 모른다. 오징어가 넘실거리는….

 

크루즈를 타고 배 선상으로 올라왔을 때 헬리콥터 착륙장소가 운동장 같았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했던 그 장소와 흡사했다. 저절로 상상속으로 빠져들었다. 오징어게임을 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으로 생각되었으니 꽤나 그 드라마가 인상적이었나 보다.

 

 

배 선상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는 짙푸르다 못해 무시무시하다. 무엇이든 삼킬 것 같은 시퍼런 바다는 괴괴하고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너울이 굽이치고 바다의 혓바닥 같은 허연 파도가 들락거리고, 배를 따라 다니며 거품을 문다. 여기는 내 영역이라는 듯이. 처음에는 난간에 기대기도 겁이 났다.

 

전날 독도에 발을 디뎠다. 그때는 생각이 달랐다. 성경의 창세기가 떠올랐다.

독도에 서서 청색에 빠져드니 바다와 하늘은 닮아있음이 보인다. 멀리 우주에서 보는 지구 또한 푸른색이다. 자연과 과학은 어쩌면 신의 섭리인지 모른다.

물과 물 사이를 갈라 창공을 만들고 하늘이라 부르셨다.’ 원래 같은 곳에서 와서 위, 아래가 다 푸른색인가 보다. ‘물이 한곳으로 모여 뭍이 드러나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고 뭍을 땅이라, 물이 모인 곳을 바다라 부르셨다.’ 태초의 땅은 이랬을 것이다. 시간이 멈추어지고 주위는 정적의 사위四圍에 감싸인 곳, 우리는 그곳에 들어갔다. 코발트빛 세상에 초대되어 흰구름처럼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다.

독도의 독은 돌의 방언으로 돌로 이루어진 섬이라는 뜻이며 신라시대에는 높은 산의 섬이라는 뜻으로 우산도于山島라 불렀다.

독도는 이름도 많다. 성종실록에는 섬이 세 개의 봉우리로 보인다는 뜻으로 삼봉도三峰島로 기록되어 있다. 가지도可支島가지가 사는 섬이란 뜻이다. 가지란 바다사자의 일종으로서 강치 또는 가제로도 불린다. 독도에 강치가 많이 서식하여 붙여진 이름이지만 일본강점기 때 일본인들의 무분별한 포획으로 멸종되었다. 울릉도에 물개가 나타나면 혹시 강치인가 해서 사람들은 관심있게 바라본다고 한다. 그렇지만 북방물개라니 안타까움이 앞서지만 물개 등장은 언제나 소중하다.

석도石島1900년 대한제국에 등장한 말로 돌섬의 한자표기이다. 일본은 마쓰시마松島라고 부르다가 1905년 이후 다케시마竹島라고 부르고 있다.

독도가 처음으로 서양에 알려졌을 때 서구인들은 리앙쿠르암 Liancourt Rocks으로 불렀다. 1849년 독도를 발견한 프랑스 포경선 리앙쿠르호의 선박이름에서 가져왔다. 영국인들은 독도를 호넷암으로 불렀는데 독도를 발견한 영국함대의 함장 이름을 땄다.

러시아는 메넬라이올리부차 Menelai-Olivutsa로 불렀다. 러시아 극동함대가 발견하면서 서도는 올리부차 동도는 메넬라이라고 불렀다.

나는 고독한 섬이라 부르고 싶다. 쉽게 길을 내주지 않는 거센 바다로 인하여 되돌아가거나 파손된 배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초행길인데 운이 좋았다. 바람 잠잠히 하늘이 독도의 길을 열어 주니 바다는 어쩐 일인지 따라주었다.

모두들 자신의 입장에서 불렀다. 섬은 그대로인데 인간은 자기 마음대로 부르고 싶은 데로 부른다. 이 다양한 이름들이 독도를 더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인가. 중요한 위치에 섬이 존재하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Dokdo 獨島, 그를 만난 것은 행운을 거머쥔 거다. 그 귀한 몸에 배를 타고 들어가서 단 30분을 머물렀다. 아쉬움에 모두들 설레발을 쳤다. 뱃고동소리에도 사람들은 배를 타지 않고 더 머물고 싶어서 머뭇거리며 사진을 찍어댔다. 이것 또한 행운인데 자꾸만 욕심이 생긴다. 섬 위로 올라가서 내려다보고도 싶고 이곳의 풀, , 나무, 새들을 가까이서 보고도 싶다. 배는 고동을 연거푸 불어댔고 햇빛이 좋아 바다는 은청색으로 반짝였다.

파란 물 위에 도도히 서있는 섬, 나이는 189만 살이다. 섬과 바다는 태초의 세상을 간직하고 있다. 맑은 날에는 울릉도에서 훤히 바라보이는 섬으로 어부들이 고기잡이하다가 쉬기도 하고 풍랑을 만나면 피난처가 되기도 했다.

그 고독한 섬을 우리들은 궁금해 하고 그리워한다. 동쪽 끝 한반도의 문지기 같은 섬, 많은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고 끊임없이 찾아가 안부를 묻는 섬이다.

 

 

울릉도에서 하루를 보내고 크루즈호를 탔다. 이만톤급 배가 입을 벌리고 우리를 집어넣었다. 바다가 험악해서 다른 배는 다 결항이고 유일하게 크루즈만 운행한다. 울릉도에서 포항까지는 6시간 정도 걸린다. 흔들림이 없어서 배멀미도 안한다. 바람을 맞아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파도와 너울을 바라보니 이게 꿈인가싶다. 크루즈의 운항 또한 인간승리다. 얼마전까지도 섬에 그대로 묶이어 바다와 하늘이 허락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배는 오징어게임을 생각나게 하고 자연은 창세기를 떠올리게 하는 이 묘한 대조, 동해바다 한가운데 선상에서 일몰에 묽게 물드는 바다를 마주하고 극과 극의 혜윰*에 빠져든다. 원시와 현대를 오가니 심장박동이 느껴지며 북소리가 들린다.

 

 

*혜윰 : 생각을 뜻하는 우리말

 

 

 

 

임금희 r-keumhee@hanmail.net

시인, 수필가.

2012지필문학으로 시가 당선되었고 월간한국수필에서 수필가로 등단하다.

현재 계간 리더스에세이 편집장이며 한국문인협회 위원, 한국수필가협회·강남문인협회 이사.  

작품집 : 숨어우는 작은 새》 《낙타가 사는 부엌》 《혜윰

수   상 : 제13회 한국문인협회 서울시문학상, 21회 서울문예상, 리더스에세이 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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