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tory/쟈스민 수필

보물창고에 들어가다

나일강의백합 2013. 1. 17. 10:11

 

보물창고에 들어가다

 

                                                                                  임 금 희

 

  12월호 한국수필을 펼치니 문학기행이 들어온다. 신묘년의 마지막 달이니 유달리 행사가 많고 그에 걸맞게 여행기가 많이 실려서 그런지 동적이고 화사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 첫눈이 내렸다. 엄밀히 말하면 첫눈이 아닐는지 모르지만 눈다운 눈이 내리고 이 겨울에 처음 봤으니 첫눈으로 나름 정의를 내려 본다. 창밖으로 날리는 눈을 보면서 책을 펼치니 낭만이 한 아름 들어온다. 책의 서두는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자카렌타 꽃나무에 대한 글이 실려 있었다. 보라색 꽃이라니 상상만으로도 몽환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며 호주의 색다른 면을 알게 된 느낌이다. 호주는 가본 적이 없고 어느 날 뉴스에서 유학생이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두 번 치어서 아주 죽게 했다는 그런 내용을 읽은 적이 있으며 백호주의가 너무 강해서 유색인종은 발붙이기가 쉽지 않다는 그 정도다. 그리 호감이 가는 나라가 아니라서 그런지 ‘호주사랑’이라는 제목이 썩 내켜지지가 않았다. 그것은 나의 주관적인 관점이며 글은 재미있게 읽었다. 모든 글을 정독으로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누구나 나름 개성이 있고 성격이 다 다르듯이 자신의 마음을 두드리는 글도 다 틀리다고 생각한다. 기행수필도 알지 못하는 곳을 알아가는 좋은 면도 있지만 내 가슴속엔 언제나 막연한 시골 초가집의 향수를 갖고 있다. 서울태생이고 거의 서울에서 자라서 시골 초가집에 대한 것은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언제나 그걸 그리워한다. 지금 초가집에서 옛날식으로 살라고 하면 정말 자신이 없지만 마음만은 그런 것하고 무관한 듯 느껴진다. 눈에 들어오는 글은 ‘그 해 가을 늙은 수탉이 울었다’였다. 저절로 눈이 가고 저절로 읽혀졌다. 다시 한 번 읽었다. 아무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글이 마음으로 들어가서 나오지를 않았다. 아픔을 담담히 그린듯한데 가슴이 막혀오고 한참동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책을 내리고 눈 내리는 거리를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바라만 보았다.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책을 들었다. 손거울을 읽었을 때 나 자신의 반대편을 만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선생님에 대한 좋은 추억이 별로 없고 그냥 선생님하면 나무토막 같이 딱딱하고 권위적이고 경직된 느낌이 들었다. 작고 소심하고 말도 잘 못하고 거의 보일 듯 말 듯 한 아이가 눈에 들어오는 선생님도 없었을 것이며 작은 잘못으로 엄한 야단을 맞았을 때의 주눅감이 아직도 그 학창시절을 기억하면 내 어깨를 짓누른다. 그 선생님이 손거울 안에 있었다. 바늘로 찔러도 피한방울 안 나오는 사람이라면 너무한 걸까. 그런데 내게도 가뭄에 단비 같은 선생님이 한분 계셨다. 관심을 가져주셨던 단 한분의 선생님에게 이 자신감 없고 한심한 바보는 말다운 말 한마디도 못하고 그냥 보냈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아직도 나에게 있어서 학교는 그리 행복한 곳이 아니었고 애써 외면하고 싶은 곳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세월이 약이라는 유행가처럼 교사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10여년이 흐른 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이 학교를 가서 만난 선생님들 때문에 바뀌게 되었다. 몇몇 선생님은 우리나라의 보석 같은 분들이라고 생각하니, 인생을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이 고쳐지는 느낌이 든다.

 ‘은유적 초상화’는 여태 몰랐던 보석 같은 지식을 얻은 느낌이 들었다. 신윤복의 그림이 생각나는 야외초상화가 너무나 신선하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잊혀져가는 어두운 진실 대열과 평설이 있었다. 그 숨막히게 밀려오는 두려움이, 또 묻혀져서는 안되는 우리의 역사가 거기에 있었다.

 

  해리포터에 비밀의 방이 있듯이 내 가슴속에도 방이 있다. 몸과 마음이 힘들 때 그 방을 열어서 내가 모은 보물도 보고 아름다운 이야기도 꺼내서 읽어보면서 위안을 찾고 다시 새롭고 희망 가득한 삶을 얻고는 했다.

한국수필을 읽으면서 나는 그랬다. 보물창고에 들어가서 온갖 진귀한 보석들을 보는 느낌이었다. 보석들은 자신만의 아름다운 특유의 색깔과 빛으로 창고를 빛내고 있었다. 그곳에 머무르며 감상하면서 흥분되고 기쁨에 찬 시간을 보낸 느낌이었다.

 

                                                             (2012, 2월 한국수필 독자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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