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tory/쟈스민 수필

있어도 갖고 싶은 것

나일강의백합 2013. 1. 17. 10:39

 있어도 갖고 싶은 것  

                                                                                임 금 희

 

“뻐꾸기는 있는데 기러기는 없습니다. 모래는 있는데 자갈은 없습니다. 손목에는 있는데 발목에는 없습니다. 벽에는 있는데 귀에는 없습니다. 무엇일까요?”

  도대체 뭘까. 감이 안 잡힌다.

  큰애와 같이 차를 타고 가다가 라디오를 틀자마자 나오는 소리였다.

“엄마, 뭐지? 생각이 안나.”

“글쎄.”

  라디오에서는 그 질문을 던져놓고 음악을 틀어준다. 음악을 들으면서 골똘히 생각을 했다.

“그래! 시계다.”

  번개같이 떠올랐다. 뻐꾸기시계, 모래시계, 벽시계, 손목시계다. 그렇게 쉬운 문제를 생각 못해서 절절맨 것이다. 알고 나면 쉽고 우습다.

  큰애도 시계가 맞다면서 피식 웃는다. 음악이 끝나자 다시 퀴즈를 시작한다.

“초는 있는데 촛대에는 없습니다. 배꼽에는 있는데 배는 없습니다.”

 

  가끔 떠오르는 시계가 있다. 외가댁 할아버지 방에 걸려있던 벽시계다. 별로 크지도 않고 직사각형 모양이었던 그 시계는 시간을 거슬러 아주 오래전 마차타고 다니던 시대에서 나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빛바랜 갈색에 옛스러운 모습에다 멋스럽게 달린 시계추는 자신이 건재하다는 것을 보이기라도 하는 듯 씩씩하게 왕복운동을 했었다. 돋보기를 끼고 시계를 고치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내 가슴속에 남아있다.

 

  나는 시계를 좋아한다. 아직도 지나가다가 특이하거나 예쁜 시계가 눈에 띄면 갖고 싶은 욕망이 꿈틀댄다.

벽에 주석시계 달던 일이 생각난다. 친구들과 같이 쇼핑을 하다가 주석으로 만들어진 고고한 멋이 나는 시계가 눈에 띄었다. 사파이어처럼 신비스럽게 푸른빛을 내는 구슬이 꽃처럼 박힌 타원형의 시계가 나의 눈을 머물게 하면서 내것이 될려고 그랬는지 은은한 향기를 품은 듯도 했다. 시계가 많지만 고풍스러우면서도 은근 세련되고 크지도 작지도 않은 시계를 달고 싶었는데 안성맞춤이었다. 그걸 사가지고 와서는 벽에 다는데 쉽지가 않았다. 벽에 못이 들어가서는 흔들거렸다. 콘크리트 벽 뒤가 비어있는 것 같았다. 그날은 그냥 넘기고 다음날 아침부터 다시 시작했다. 아침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연장을 꺼냈다. 신문지를 엄청나게 두껍게 접고 그 위에 못을 박았다. 제법 못이 잘 박힌 것 같아서 시계를 달았다. 안도를 하고 연장을 집어넣는데 와장창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그만 오 분도 안돼서 떨어진 것이다. 주석시계가 너무 무거워서 못이 지탱하지 못한 것 같았다. 시계는 다행히 멀쩡했는데 그 밑에 있었던 수족관의 모서리를 쳐서 어항이 깨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정신없이 물고기를 건지고 깨진 어항을 치우고 물을 닦아내고 한바탕 씨름을 하고 나서는 어항을 사러가야 했다. 이게 무슨 사서 고생이람. 저절로 한숨이 나왔지만 해결해야했다. 수족관을 설치하고 다시 물을 채우고 열대어들을 옮기고 정리를 하고 나니 날이 저문다. 하루 종일 그 일에만 매달렸던 것이다. 문제는 시계가 너무 무거워서 걸 수가 없었다. 남편한테 부탁하려니 또 샀다고 한마디 들을 것 같았다. 형광등을 달아주는 아저씨를 불렀다. 그 아저씨는 우리 다용도실 수리를 해주셨고 현관 도어체크등 모든 것을 교체할 때마다 부르는 할아버지다. 이럴 때 단골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아저씨는 시계를 달 벽에다가 미리 가운데 홈이 파여 있는 굵은 나사못을 박고 그 홈에 맞는 뾰족한 나사못을 끼웠다. 그런 다음 그 못에 시계를 다니 안정감 있게 시계가 달렸다. 벽에 못을 치는 방법이 있었으니 이참에 철저히 배웠다. 이제는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을 듯했다.

 

  세월과 함께 묻혀버린 시계가 얼마나 많은지 가늠이 안 된다. 그런데도 길을 가다가 예쁜 시계를 보면 눈이 저절로 그리로 가니 좋아하는 것을 멈출 수는 없는가보다.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보고 가지만 사려는 마음은 억제되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날 하루 종일 고생한 것으로 시계에 대한 충동구매욕구가 사라졌으니 장족의 발전을 한 것이다.

 

                                                                           (2012. 12월  한국수필 신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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